배구선수 고유민 선수 커리어·포지션·활약상 총정리

배구선수 고유민 선수 커리어·포지션·활약상 총정리

고(故) 고유민은 여자프로배구 현대건설에서 뛰며 수비와 리시브, 팀 기동력을 책임졌던 선수였습니다. 

최근에도 고인의 이름이 다시 언급되는 이유는, 단지 안타까운 결말 때문만이 아니라 드래프트 상위 지명 선수로 출발해 포지션 변화까지 감당하며 팀 전력에 기여했던 커리어가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이 글에서는 배구선수 고유민의 기본 프로필, 포지션 변화, 실제 활약상, 팀 성과, 그리고 사후 논란까지 확인 가능한 자료를 바탕으로 정리합니다. 

고유민 프로필: 나이·신장·출신지·학력

(출처:블로그)

고유민은 1995년 2월 9일생으로, 경상북도 포항시 출신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신장은 176cm로 소개돼 왔으며, 학생 시절에는 포항동부초, 포항여중, 대구여고를 거치며 배구 선수로 성장했는데요. 

특히 대구여고 시절 주 공격수로 활약했고, 2013년 CBS배 전국남녀중고배구대회 여고부 우승 멤버로 이름을 알렸습니다. 

이후 같은 해 V리그 신인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4순위로 현대건설에 입단하며 프로 무대로 올라섰는데요.

프로에서도 활약하며 대한민국 대표 여자 배구선수로 자리매김했습니다. 

레프트로 시작해 리베로 역할까지 맡은 멀티 자원

(출처:SPOTV)

배구선수 고유민의 기본 포지션은 레프트(아웃사이드 히터)였습니다. 

하지만 프로에서의 커리어는 한 포지션 선수로 끝나지 않았는데요. 

현대건설에서 뛰는 동안 그는 백업 레프트로 출전하며 수비와 리시브에 강점을 보였고, 팀 사정에 따라 리베로 역할도 수행했습니다. 

실제 보도에서도 고유민은 “리시브와 수비에 강점이 있는 선수”로 소개됐고, 2019-2020시즌에는 레프트뿐 아니라 리베로로 기용되며 포지션 변화의 부담을 안고 시즌을 치렀는데요.

이런 유형의 선수는 기록지에 크게 드러나지 않아도 팀 밸런스에 중요한 역할을 맡는 경우가 많습니다. 

프로 커리어 출발: 2013 드래프트 1라운드 4순위

고유민의 프로 커리어는 2013-2014 V리그 신인드래프트 1라운드 4순위 지명에서 시작됐습니다. 

고교 시절 이미 공격력과 수비 기여도를 인정받았고, 대구여고 우승 멤버라는 이력까지 더해지며 현대건설의 선택을 받았는데요. 

이후 2013년부터 2020년까지 현대건설에서 뛰며 7시즌가량 팀에 몸담았습니다. 

화려한 득점형 스타보다는 팀 내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쪽에 가까웠지만, 신인 드래프트 상위 지명자답게 기량 자체는 일찍부터 기대를 받았는데요. 

프로 입단 후에는 경기 출전 기회를 통해 점차 수비형 윙 자원으로 입지를 넓혀갔습니다. 

기록보다 팀 밸런스에 기여한 수비형 자원

배구선수 고유민의 활약을 말할 때는 공격 득점 수치보다 팀 밸런스에 기여한 부분을 봐야 합니다. 

고유민은 팀 내 주포로 분류되기보다는, 리시브와 수비에서 안정감을 보태는 선수로 평가됐습니다. 

경기 보도와 구단 관련 기사에서도 그는 “백업 레프트”, “리시브와 수비에 강점이 있는 선수”로 반복 소개했는데요. 

이런 선수는 스타 마케팅의 중심에 서지는 않지만, 장기 시즌을 치르는 프로배구에서는 로테이션 유지와 수비 라인 안정에 중요한 역할을 맡습니다. 

특히 현대건설이 강팀 전력을 구축하던 시기, 고유민은 베테랑과 주전 자원 사이에서 팀의 폭을 넓혀주는 카드로 활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2015-2016 챔프전 우승 멤버, 2019 KOVO컵 우승 경험

(출처:블로그)

고유민은 개인 타이틀보다 팀 우승 경험이 분명한 선수였습니다. 

현대건설은 2015-2016시즌 챔피언결정전에서 IBK기업은행을 꺾고 우승했고, 당시 기사들에서는 양효진·황연주 같은 주축과 함께 김연견, 정미선, 고유민 등 젊은 자원들이 우승 경험을 통해 성장했다고 평가했는데요. 

또한 2019년 현대건설 관련 구단 자료에는 KOVO컵 우승의 흐름 속에서 고유민이 시즌 준비 과정에 포함돼 있었고, 팀은 컵대회 우승을 계기로 정규리그 반등을 노렸습니다. 

즉 고유민은 개인 수상 기록보다, 우승권 팀의 로테이션 자원으로 실제 우승을 경험한 선수입니다. 

FA와 커리어 전환점: 2019년 첫 FA 자격 획득

고유민은 2018-2019시즌 종료 후 첫 FA 자격을 얻었고, 이후 현대건설에 잔류했습니다. 

이때 기사에서는 그를 다시 한번 “리시브와 수비에 강점이 있는 선수”로 설명했는데요.

FA 자격을 얻었다는 것은 그만큼 프로무대에서 일정 기간 입지를 유지했고, 구단도 전력의 한 축으로 계속 평가했다는 의미입니다. 

스타 플레이어급 대형 계약은 아니었더라도, 프로배구에서 FA 잔류 계약을 체결한 자체가 커리어의 의미 있는 이정표였는데요. 

다만 이후 2019-2020시즌에 포지션 변화와 경기력 부담, 외부 비판이 겹치면서 커리어는 예상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게 됐습니다. 

포지션 변화, 부진, 그리고 악성 댓글 문제

고유민 커리어에서 가장 힘든 시기로 꼽히는 구간이 2019-2020시즌입니다. 

이 시기 그는 기존 레프트 역할뿐 아니라 리베로로도 기용됐고, 익숙하지 않은 포지션 변화 속에서 경기력 부담을 안았습니다. 

여러 보도는 당시 성적 부진과 함께 팬들의 악성 댓글, SNS 비난이 이어졌다고 전했는데요. 

서울와이어, 아시아경제 등도 고유민이 2019-2020시즌 중 팀을 떠나기 전까지 포지션 변화와 여론 압박 속에서 어려움을 겪었다고 보도했습니다. 

이런 배경은 고인의 커리어를 돌아볼 때 빼놓기 어렵지만, 선수의 한 시즌 부진으로 환원할 문제는 아니라는 점도 함께 짚을 필요가 있는데요. 

유족 주장과 구단 반박, 그리고 ‘계약 해지 후 임의탈퇴’ 문제

(출처:YTN)

고인의 사망 이후 가장 크게 불거진 쟁점은 악플 문제만이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2020년 8월 유족과 소송 대리인은 기자회견에서 고인이 구단 내에서 훈련 배제와 따돌림을 겪었고, 구단이 트레이드를 미끼로 계약 해지를 종용한 뒤 임의탈퇴로 선수 생명을 사실상 끝냈다고 주장했습니다. 

반면 현대건설은 자체 조사 결과 따돌림은 없었고, 고인이 시즌 중 팀을 이탈한 뒤 운동을 계속하기 어렵다는 의사를 밝혔으며, 트레이드 시도도 했지만 불발돼 임의탈퇴 공시를 했다고 반박했는데요.

연합뉴스와 SBS 취재파일은 이 과정에서 ‘계약 해지 후 임의탈퇴’가 규정상 문제가 될 수 있는지, 또 배구계에 비슷한 관행이 있었는지까지 짚었습니다. 

결국 이 사안은 선수 개인 비극을 넘어, 선수 보호와 리그 운영 관행을 돌아보게 만든 사건입니다.

고유민의 커리어를 어떻게 기억해야 하나

배구선수 고유민을 기억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를 비극의 상징으로만 남겨두지 않는 일입니다. 

그는 포항 출신으로 성장해 대구여고 우승을 이끌고, 1라운드 4순위로 프로에 입단해 현대건설에서 7시즌 가까이 뛴 선수였습니다. 

레프트와 리베로를 오가며 수비에 강점을 보였고, 2015-2016 우승 멤버이자 2019년 FA 계약을 맺은 프로 선수였는데요. 

이런 커리어는 분명히 기록돼야 합니다. 

동시에 그의 이름이 다시 불릴 때마다, 선수 보호 제도와 리그 관행, 악성 댓글 문화에 대한 반성도 함께 따라와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고유민의 선수 생활을 보다 온전히 기억하는 방식에 가깝습니다.

마무리

배구선수 고유민은 프로에서 레프트와 리베로를 오가며 수비와 리시브에 강점을 보였고, 팀 우승 멤버로 활약하는 등 분명한 커리어를 남겼습니다.

비록 선수 생활의 마지막은 안타까운 사건으로 기록되었지만, 고유민은 한 사건으로만 기억될 선수가 아닙니다. 

그는 팀 전력에 기여했던 프로 배구 선수였고, 여자배구 역사 속 한 구성원이었습니다. 

동시에 그의 이야기는 선수 보호 시스템, 악성 댓글 문제, 스포츠계 문화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든 계기가 되었습니다.

글쓴이

정대현のアバター 정대현 12년차 발리 애널리스트

안녕하세요, 코트 위 흐름과 선수들의 움직임을 깊이 있게 해석하는 발리볼 전문 필자 정대현입니다.
리그 소식과 이적 이슈부터 경기 내 전술 변화까지, 스파이크러라는 이름으로 현장의 이야기를 친근한 시선으로 풀어내고 있습니다.
발리볼의 매력을 더 선명하게 느낄 수 있도록 사실 기반 분석과 생동감 있는 리포트를 균형 있게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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